지난 여름

2025. 2. 1. 17:31Movie & Drama Story/a movie

 

 MOVIE 

 지난 여름 


 

 한줄所感 

 무더운 여름을 온전히 느낄 수밖에 없는 본가에서의 삶 

 


 

자라나면 자라날수록 할머니댁에 가는 게 꺼려지기 시작했다. 쥐똥 알레르기인지, 아닌지 확신할 수 없지만, 할머니댁에만 가면 충혈되는 눈과 피를 토할 것처럼 쏟아지는 기침을 감당하기도 어려웠고, 더러운 화장실도 싫었다.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,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이었다. 본가도 에어컨은 장식품의 역할이 90%이긴 했지만, 그래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건 다른 차원이었다. 에어컨이 있으면 '진짜 죽을 것 같으면 틀 수 있어'라는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.

 

성인이 되고나서 독립을 하자 내게 주어진 자유 중 하나가 바로 '에어컨 사용'이었다. 더 이상 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날이 아니었다. 에어컨이 있다면 죽을 것 같은 여름도 수월히 넘길 수 있었다. 에어컨의 자율성까지 확보한 나는 더 이상 에어컨이 없는 공간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. 그렇게 에어켄이 내 생활 속에 자리 잡을수록 할머니댁에 가는 건 점점 더 꺼려지기 시작했다.

 

이런 점에서 할머니댁, 외할머니댁은 나에게 있어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. 더운 여름날이면 선풍기와 부채에 의지해 여름을 견딘다. 너무 힘들면 수박을 쪼개서 먹고, 시원한 처마 밑에 미동도 않고 누워있고는 했다. 추운 겨울날이면 몸 위에 '얹는다'라고 할 법한 두터운 이불을 덮고 지글지글 끓는 바닥에 눕는다. 그리고 코 끝과 귀 끝을 스치는 찬 바람을 느끼곤 했다. 인위적으로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요즘이 되어보니, 날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제약의 소중함이 생각나기도 한다.

 

영화 <그해 여름>은 더운 여름날을 배경으로 한 (전) 공무원, (현) 취업 혹은 사업 혹은 인생 준비생 혹은 백수의 이야기가 나온다. 에어컨이 없는 아버지의 집에서 청년은 여름을 나며, 가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밖을 나선다. 그리고 추수를 맞이한다.

 

영화가 끝나고 난 뒤, GV에서 감독님이 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. 밥을 먹는데 문득 이 쌀은 누가 만드는지, 어디서부터 오는지 그 시작점이 궁금해져서 이 영화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. 이번 영화는 더운 여름을 배경으로 했으니, 다음 영화는 매서운 겨울 속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.

 

다음 영화가 참 궁금해졌다. 본가에서 더운 여름을 나는 모습도, 도시에서 살아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도 모두, '나'를 투영할 수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.

 

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도시생활을 시작할 젊은 청년 민우를, 그리고 나를 응원하며.

 


 

본가

본래 살던 집. 잠시 따로 나와 사는 사람이, 가족들이 사는 중심이 되는 집을 가리키는 말

 

소 뒷발에 차일까봐 진짜 무서우셨다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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